빌려온 문학·예술

[스크랩] 참 우습다 / 최승자

시를 쓰는 공인중개사 조태식 2011. 5. 16. 14:21
반응형

var articleno = "17352649";

 

 

우습다       

 

                  최승자

 

작년 어느 날

길거리에 버려진 신문지에서

내 나이가 56세라는 것을 알고

나는 깜짝 놀랐다

나는 아파서

그냥 병(病)과 놀고 있었는데

사람들은 내 나이만 세고 있었나 보다

그동안은 나는 늘 사십대였다

 

참 우습다

내가 57세라니

나는 아직 아이처럼 팔랑거릴 수 있고

소녀처럼 포르르포르르 할 수 있는데

진짜 할머니 맹키로 흐르르흐르르 해야 한다니

 

리하여 우리들은 잠들었네

 

 

그리하여 우리들은 잠들었네

너는 흔들리는 코스모스의 잠

나는 흩어지는 연기의 잠

 

한 세기가 끝날 무렵에도

너는 코스모스의 잠

나는 연기의 잠

 

그동안에 제1차 세계대전

제2차 세계대전, 뭐라 뭐라 하는

 

그러나 우리 두 사람에겐

흔들리는 코스모스의 잠과

흩어지는 연기의 잠뿐이었네

 

 

 

중요한 것은

 

 

말하지 않아도 없는 것은 아니다

나무들 사이에 풀이 있듯

숲 사이에 오솔길이 있듯

 

중요한 것은 삶이었다

죽음이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그 거꾸로도 참이었다는 것이다

 

원론과 원론 사이에서

야구방망이질 핑퐁질을 해대면서

중요한 것은 죽음도 삶도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삶 뒤에 또 삶이 있다는 것이었다

죽음 뒤에 또 죽음이 있다는 것이었다

 

 

 

홀로 가는 낙타 하나

 

 

누구나 별 아래서 잠든다

길을 묻다 지쳐서

길 위에서 잠든다

 

누구나 별 아래서 잠든다

죽음을 죽음으로 일깨우면서

 

그리하여 별빛 아래

홀로 가는 낙타 하나

 

별 아래 잠도 없이

홀로 가는 낙타 하나

 

 

 

그녀는 사프란으로 떠났다

 

 

그녀는 사프란으로 떠났다

무수히 해가 뜨고 해가 져도

그녀는 돌아오지 않았다

 

가끔씩 초인종이 울려도

거기엔 아무도 없었다

 

그녀는 사프란으로 떠났고

그녀는 이미 돌아오지 않는다

나는 또 오늘의 요리를 만들고 있을 뿐이다

 

부엌 창문턱에 작은 아이비 화분,

먼 꿈 하나

댕그라니

꿈에도 비에 젖지 못할

 

 

 

가만히 흔들리며

 

 

키 큰 미루나무

키 큰 버드나무

바람 사나이

바람 아가씨

 

두둥실 졸고 있는 구름 몇 조각

 

꼬꼬댁 새댁

꿀꿀 돼지 아저씨

음매 머엉 소 할아버지

 

모든 사물들이 저마다 소리를 낸다

그러한 모든 것들을

내 그림자가 가만히 엿듣고 있다

내 그림자가 그러는 것을

나 또한 가만히 엿보고 있다

(내 그림자가 흔들린다

나도 따라 가만히 흔들린다)

 

 

 

어느 토요일

 

 

회색 근로복을 입은

노동자 아저씨들이

토요일 오후 늦게

퇴근을 하지 않고서

볼차기 놀이를 하고 있다

 

(세월이 볼을 텅텅 굴리면서 지나간다)

 

불행했던 사나이 행복했던 예수가

아직도 행복한 꿈속에서 졸면서

세월이 볼을 텅텅 굴리면서 지나가는 것을

지켜보고 있다

 

 

보따리장수의 달 / 최승자

 

 

시간 속에서 시간의 앞뒤에서

흘러가지도 않았고 다만 주저앉아 있었을 뿐

日月도 歷史도 다만 시간 속에서

나는 다만 희미하게 웃고 있었을 뿐

 

먼 길 보따리장수의

흰 하늘 문먼 설원(雪原)

보따리장수의 달만 흘러간다

 

흰 하늘 눈먼 설원(雪原)

가도 가도

흰 하늘 눈먼 설원(雪原)

 

  

 

쓸쓸해서 머나먼

 

 

먼 세계 이 세계

삼천갑자동방삭이 살던 세계

먼 데 갔다 이리 오는 세계

짬이 나면 다시 가보는 세계

먼 세계 이 세계

삼천갑자동방삭이 살던 세계

그 세계 속에서 노자가 살았고

장자가 살았고 예수가 살았고

오늘도 비 내리고 눈 내리고

먼 세계 이 세계

 

(저기 기독교가 지나가고

불교가 지나가고

道家가 지나간다)

 

쓸쓸해서 머나먼 이야기올시다

 

 

- 시집『쓸쓸해서 머나먼』(문지, 2010)

 

 

 

* 최승자 : 1952년 충남 연기 출생. 1979년 <문학과지성>으로 등단.

시집으로 <시 시대의 사랑> <즐거운 일기> <기억의 집> <내 무덤, 푸르고>

<연인들> <쓸쓸해서 머나먼>이 있고, 옮긴 책으로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굶기의 예술> <죽음의 엘레지> <침묵의 세계> <자살의 연구>

<상징의 비밀> <자스민> 등이 있음.

 

 

 

 

최승자, 고통속에서 나를 지탱해준 건 詩

2010-11-04 08:31

 

“요즘 시들이 다변화 되고 있는데 말로 흘러가는게 아니라 시적으로 흘러 갔으면 좋겠다”

80,90년대 가장 영향력 있는 시인으로 불려온 최승자(58.사진) 시인이 10여년간의 공백끝에 올초 내놓은 ‘쓸쓸해서 머나먼’(문학과지성사)으로 올해 대산문학상 시부문을 수상했다. 3일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최 시인은 정신질환으로 10여년동안 병원오가는 생활을 하다 지난해 문득 “시를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그렇게 쓴 시로 이렇게 큰 상을 받게 돼서 고맙다고 말했다.

하나의 생각에 사로잡히면 밥도 잊고, 때도 잊고 혼잣말도 하는 그런 혼돈의 생활속에서 그를 버틸 수 있게 해 준건 시였다. 

“시 만이라도 붙잡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시를 쓰기 시작한 게 이젠 봇물이 터져 자꾸 쓰게 된다고 한다. 시집을 낸지 1년도 안됐는데 그렇게 쓴 시가 다시 60여이 모아졌다.

이번 ‘쓸쓸해서~’에 실린 시편들은 이전의 섬?한 어둠과 날카로움이 사라지고 투명하고 가벼워 그의 전작들과 비교된다.

최 시인은 이런 변화를 “내 시는 지금 이사 가고 있는 중”이라며, 이젠 좀 느리고 하늘거리는 포오란 집으로 이사가고 싶다고 했다. 또 시 뿐 아니라 소설도 좀 써 볼 생각이라는 구상도 밝혔다.

그 중 하나는 ”노자의 도덕경을 읽은 감회를 담아 시공이 없는 유구하게 낡고 낡은 설화의 세계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얘기를 써보려 한다”고 밝혔다.

등단 31년째로 지난 8월 지리산문학상을 수상한데 이어 이번에 대산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최 시인은 시 인생의 새로운 전기를 맞았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m.com

 

 

 

 

 

 

출처 : ㅎ ㅏ늘
글쓴이 : ㅎ ㅏ늘 원글보기
메모 :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