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一) 하나에 하나를 더하면 하나가 되고 하나에 하나가 떨어져 나와도 여전히 하나인 것을 밤을 붙잡고 하얗게 새도록 마음으로 보고 있어도 어느새 저만큼 멀어져 가는 그 하나를 하나가 아니기에 이름이 하나인 그 “하나”를 벙어리처럼 입만 벙긋거리다가 이제는 마주보고 희미하게나마 웃을 수 있다.. 자작시3 (2010년~ 2011년 )/월간한울문학 출품작 2011.04.28
先親忌日에 즈음하여 本鄕의 뜰에 닿아 허기진 심장을 보듬어 줄 그 곳을 향해 풀어진 魂이 거친 숨을 고른다 몇 번이고 새겨 넣었을 법한 結氷의 시간 등이 굽고 뒤틀린 그러나 꼿꼿한 소나무, 허옇게 내뱉는 입김에 술렁이는 안개의 심상치 않은 눈빛 떨어진 잎 脫色하고 분분(紛紛)하며 진눈깨비의 번들거림과 흙의 추레.. 자작시3 (2010년~ 2011년 )/월간한울문학 출품작 2011.02.18
술(酒) 푸른 밤은 별이 차다 가만히 숙인 그림자에 바람이 일면 記憶의 江 너머 彼岸의 벼랑을 내려서는 미련 설핏 웃는 듯도 하다, 슬픈 술은 나를 마주하고 눈빛만 서러운 無間의 落下에 기대어 술은 올라가고 나는 내려가는데 시간은 자꾸만 거꾸로 서려한다 문득 전화기에서 술기(酒氣)가 고개를 빼어 물.. 자작시3 (2010년~ 2011년 )/월간한울문학 출품작 2011.01.21
國會 북녘 땅이 붉기만 하다 잦은 포격에 눈시울이 젖듯 애먼 걸음 재촉하며 숨만 가쁜 民草 옷깃 여미며 귀만 열어 놓을 뿐 간신히 몸만 누일지라도 이만한 곳 있으랴 가슴 쓸어내리며 하늘만 바라보네 國會에서 큰일을 했다 파행적 예산안 통과를 두고 정의로운 일이라 한다 결코 부끄럽지 않기에 헝클어.. 자작시3 (2010년~ 2011년 )/월간한울문학 출품작 2010.12.10
낯선 곳에서(2) 촉촉이 젖은 새벽이 창을 넘겨다보고 밤새 엉겨오던 찬바람이 슬며시 물러나 고개를 옆으로 돌리면 부스스한 모습으로 맞은 편 거울에 앉아 있는 이를 그냥 멀그레 마주 본다 얼마 동안이나 보고 있었던 것일까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옆방에선 부산스런 움직임 끝에 문 여닫는 소리가 들려오지만 .. 자작시3 (2010년~ 2011년 )/월간한울문학 출품작 2010.11.12
낯선 곳에서 섬광 그리고 천둥소리 뒤늦게 굵은 빗방울이 떨어지고 문경 마성면의 어느 한적한 채석장에 어둠이 흩뿌리기 시작한다 하나 둘 뿔뿔이 왔던 곳으로 돌아가고 문득 홀로 남은 나를 느낄 때 가로등 불빛도 흠뻑 젖은 몰골로 주저하고 있다 나 역시 시간에 이끌려 떠다니는 그들처럼 한 야산을 갉아먹던 .. 자작시3 (2010년~ 2011년 )/월간한울문학 출품작 2010.11.12
연(緣) 꽃 진 자리 바람은 자취가 없다 하나가 가면 다시금 하나가 고개를 내어 밀지만 그 어디에도 머뭄이 없다 緣이 緣을 물고 因緣이 重疊되지만 이어지는 고리에 必緣은 없다 느슨한 매듭에 미련이 팽팽히 홀치고 있을 뿐 빈 방에 빛이 들면 飛散하는 먼지마다 形形色色 방안 가득 휘황할진대 視線은 아.. 자작시3 (2010년~ 2011년 )/월간한울문학 출품작 2010.11.08
삶의 관조 가다 가다 지치면 멈춰서고 쉼이 길었다 싶으면 다시 가고 앞을 막아서면 돌아가면 되는 것을 고통의 순간이 오면 빨리 흘려버리고 기쁨은 오래 지속하려 하지만 시간은 멈추지 않고 저 홀로 가는 세월일지라 내일이 있다 말라 언제나 마주서는 건 오늘 바로 이 순간뿐 짧은 생 스쳐가는 그 어느 것 하.. 자작시3 (2010년~ 2011년 )/월간한울문학 출품작 2008.09.04
새벽 인력시장 뒤척이고 뒤척이다 밤을 새우고 새벽을 따라 거리로 흘러나왔다 시간은 뒷짐을 지고 골목 곳곳에서 어슬렁거리는데 한자리에 선 채 더이상 나아갈 수 없는 자들이 하나 둘 모여들어 다시금 어제와 같은 일이 반복되고 있다 언제까지고 이 자리를 맴도는 이들에게 내일이란 이미 탈색한 세월에 불과할.. 자작시3 (2010년~ 2011년 )/월간한울문학 출품작 2008.07.04
거듭나기 새는 알을 깨어야 비상(飛翔)이 시작되는 것을 거치른 세상 타고 앉기엔 몸짓이 너무 투박스러웠나 보다 구차스런 말 싫어 침묵한 것이 세치 혀를 감도는 변명조차 하지 못하고 어느 시인이 말하듯 수많은 인생의 갈래에서 가보지 않은 길 가려니 두려움은 차치하고 그런 길 어디에 있음인가 좁은 식.. 자작시3 (2010년~ 2011년 )/월간한울문학 출품작 2005.1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