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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남들이 시를 쓸 때 / 오규원

시를 쓰는 공인중개사 조태식 2011. 5. 13. 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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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이 시를 쓸 때 / 오규원

 

 

잠이 오지 않는 밤이 잦다.

오늘도 감기지 않는 내 눈을 기다리다

잠이 혼자 먼저 잠들고, 잠의 옷도, 잠의 신발도

잠의 문비(門碑)도 잠들고

나는 남아서 혼자 먼저 잠든 잠을

내려다본다.

 

지친 잠은 내 옆에 쓰러지자마자 몸을 웅크리고

가느다랗게 코를 곤다.

나의 잠은 어디 있는가.

나의 잠은 방문까지는 왔다가 되돌아가는지

방 밖에서는 가끔

모래알 허물어지는 소리만 보내온다.

남들이 시를 쓸 때 나도 시를 쓴다는 일은

아무래도 민망한 일이라고

나의 시는 조그만 충격에도 다른 소리를 내고

 

잠이 오지 않는다. 오지 않는 나의 잠을

누가 대신 자는가.

남의 잠은 잠의 평화이고

나의 잠은 잠의 죽음이라고

남의 잠은 잠의 꿈이고

나의 잠은 잠의 현실이라고

나의 잠은 나를 위해

꺼이꺼이 울면서 어디로 갔는가.

 

'왕자가 아닌 한 아이에게' 1978년.

 

 

+++ 

오규원 시인

경남 밀양에서 태어났으며 동아대 법학과를 졸업.

1965년 '현대문학'에 '겨울 나그네' 등이 추천되어 등단.

시집 분명한 사건, 순례, 사랑의 기교, 왕자가 아닌 한 아이에게, 이 땅에 씌어지는 서정시'

희망 만들며 살기, 가끔은 주목받는 생이고 싶다. 등이 있다.

1982년 현대문학상을 수상했다.

 

***

 

  이 시는 제목이 상기하는 바대로 일종의 오규원의 시론(詩論)격인 작

품이다. 남들이 시를 쓸 때 나도 덩달아 시를 쓰는 일을 "민망한 일"이

라고 느낀다는 것은 자신은 그런 식으로 시를 쓰지 않는다는 사실을 간

접적으로 드러낸다. 자신은 남이 쓰지 않을 때 시를 쓴다는 것이다. 이

말은 같은 시간에 시를 쓰지 않는다는 그런 단순한 시간적 의미가 아니

라, 남들이 다 쓰는 그런 시를 쓰지 않는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야 한다.

남들이 다 쓰는 그런 시를 쓸 때 자신은 편한 잠을 잘 수가 없다. 그런

시란 일견 괴로워 보이는 창작행위라고 할지라도 순전히 베끼는 행위와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다. 한 시대가 요구하는 시의 형식을 그대로 따르

고, 동시에 시대적 담론을 그대로 따르는 그런 시란, 오규원의 시적 어

투를 빌리면, 편한 잠과 다를 바가 없다, 편하고 상투적이 시는 시대적

유행과 흐름 속에 몸을 맡기고 있기 때문에 어떤 충격에도 둔감할 수밖

에 없다. 자신의 삶에서 울려오는 고통의 목소리가 아니기 때문에 삶의

여리고도 깊은 상처에 무딜 수밖에 없다. 이 상처를 오규원은 "조그만

충격"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상투적 시를 벗어나고자

하고, 삶을 그 날것의 상태에서 받아들이고자 하는 시인의 자세에서는

당연히, "나의 시는 조그만 충격에도 다른 소리"를 낼 수밖에는 없는 것

이다. 조그만 충격에도 "다른" 소리를 내는 시는 상투적이고 정형화된

사유에서 나오는 시와 '다르다'. 조그만 충격에도 '다르게' 반응하고자

하는 것이 오규원의 시론인 셈이다.

 

  그렇게 조그만 충격에도 다르게 방응하는 시인이기에 그에게 잠은 좀

처럼 찾아오지 않는다. 이 잠 못 드는 시인을 통해 그가 얼마나 세상을

고통스럽게 인식하고 있는지 알 수 있게 된다. 이런 고통스런 인식은,

""나는 남아서 혼자 먼저 잠든 잠을/ 내려다본다"와 같은 모순적 시구를

낳는다. 자신은 못 자는 잠을 누군가 달콤하게 자고 있는 상황과 그들을

바라보는 시인의 난감한 모습을 여기서 상상할 수 있다.

 

  시인은 그러한 불면의 밤을 고통스러워하면서도 그 잠을 빼앗아간 것

에 대해 원망하지는 않는다. 그 잠은 울면서 어디로 갔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점은 그 잠이 "나를 위해" 울면서 갔다는 것이다. 불면의 밤과 어

디로 간 잠은 결국 시인에게는 괴롭지만 긍정적인 현상이다. 쉽게 잠드

는 것보다 차라리 불면에 시달리겠다는 시인의 삶에 대한 자세가 확연히

느껴지는 부분이다. 그래서 "나의 잠은 잠의 죽음"익, "잠의 현실"인

것이다. 다시 말해 나의 잠은 죽음의 잠이며 현실의 잠이다. 내가 잠드는

것은 곧 죽는 것과 같고, 동시에 현실이 눈감는 것과 같다. 시인은 깨어

있을 때만 시인이라면 잠은 곧 죽음이다. 그리고 잠드는 순간, 현실과 마

주쳐야 하는 시인은 그 현실을 잃게 된다. 그래서 현실의 잠인 것이다. 이

를 시인은 "잠의 죽음" "잠의 현실"이라고 도치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남

들이 자는 잠이 "잠의 평화" "잠의 꿈"이라고, 다시 말해 평화의 잠이며

꿈꾸는 잠이라고 하더라도 "나를 위해" 잠은 나에게 찾아오지 않는다.

 

  이렇게 본다면 이 시에서 불면은 삶에 대한 치열성이 만들어낸 시인

의 의도적 산물임을 알 수 있다. 그 불면을 시인은 긍정적으로 받아들이

고 있고, 이를 참된 시인됨이라고 평가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므로 참된

시를 쓰기 위해서는 늘 깨어 있어야 한다. 깨어 있는 시인에게만 참된

시를 논할 자격이 주어지는 것이다. -한계전의 명시 읽기-

출처 : ㅎ ㅏ늘
글쓴이 : ㅎ ㅏ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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