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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시5 (2021년 ~ ) 27

[ 벽(壁) ]

지날 때는 그렇게 길더니만 돌아보니 찰나에 지난 듯 이제는 돌이킬 수도 없는 그 세월에 눈물이 다 말랐는데 아직껏 밤은 끝나지 않고 우두커니 벽을 마주하고 서면 이 긴 어둠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걸까 가다가 서다가 난 어디쯤 있는 걸까 돌아보면 돌아보면 한순간인걸 이 또한 지나갈 것을 어둠 속에 굳이 눈을 감고 벽을 더듬으며 한 발 한 발 (21.12.19 자정을 향해)

[ 나의 하나님! 나의 예수님! ]

내 어머니가 그랬다 내가 아는 내 주위의 크리스천들이 그랬다 세상에서 교회를 제일 열심히 다니는 분이 바로 하나님 그리고 예수님이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 예수님을 만나러 교회로 간다 오늘도 그들은 어김없이 교회로 가서 그분들을 만나고 마음의 빚을 덜어내고 왔으리라 나는 그들의 믿음을 존중한다 그리고 그들의 믿음의 진실성도 의심치 않는다 하지만 난 그렇지 못했다 오늘은 교회를 가지 않았다 대신에 시끌벅적한 난전으로 나갔다 나의 하나님! 나의 예수님! 늘상 그렇듯 나는 꾸벅 인사를 하였고 온갖 추악한 욕망을 숨김없이 내뿜는 시장통을 같이 누비고 다녔다 만나는 세상 사람들과 같이 찡그리고 웃고 슬퍼하고 기뻐하며 세상 사람들을 닮아가는 나의 하나님, 나의 예수님 나는 무척 슬펐고 슬픈만큼 많은 위로가 되는 그..

[나의 외로움]

[나의 외로움] 외로움은 시간을 타고 조금씩 몸짓을 불려간다 어느 해였던가 음력 1월 세찬 겨울비에 연신 몸을 뒤틀며 영양군 청기면 정족리 305번지 그 산 위에서 부친의 상을 치르고 덜덜덜 몸을 떨며 혼자서 집으로 돌아오니 어머니가 동그랗게 뭉쳐서 방 한 켠에 있었다 "잘 갔다 왔니?" 그리고 14년이 지난 7월 어느 날 또 다시 거친 여름비에 몸을 맡기고 영양군 청기면 정족리 305번지 그 산 위 아버지곁에 어머니를 두고 그렇게 집으로 돌아오니, 텅 빈 방에는 산 위에서 종일 퍼붓던 비가 먼저 와 동그랗게 뭉쳐 소리만 굴러 다니고 있었다 "잘 갔다 왔니?" 난 누구랑 얘기하는 것일까 그렇게 나의 외로움은 절정을 넘어 무뎌가기 시작했다 그래도 외로움이 시간을 타고 점차 몸짓을 불려 가는 건 어쩔 수가 ..

[벚꽃은 비에 젖고]

[벚꽃은 비에 젖고] 4월 벚꽃은 빗속으로 왔다 코로나 펜데믹을 가로 지르며 화려한 조명을 지우고 사람들 뒤로 조용히 다가왔다 붉은 듯 붉어진 듯 한없이 여린 순백의 몸짓으로 마스크인 양 살풋이 입 가리며 하늘하늘 날아 내린다 며칠만 살다 가리라 당신의 마음에 쉼을 줄 수 있다면 비를 타고 왔다가 이 비 그치면 화창한 봄 속으로 꿈결인 양 아련해질 빗속으로 가만히 온 벚꽃 언제나 그러하듯 가만히 안아주는 손길 나의 기도는 그 손길을 따라 어느새 촉촉이 젖고야 마는 벚꽃이 비에 젖는 이 밤에! (21.04.03 밤 10시 20분)

[어둠]

얕은 물에서 어둠은 쉬 쓸려난다 바닥을 닦으며 모래에 쉬었다, 자갈을 안고 버티다 급히 돌아가는 물돌이에서 길게 한자락 소리로 풀어내고 오늘은 예서 자고 가자 어제는 오늘 같고 내일은 오늘 같으려나 어제의 상처는 오늘에 아물고 오늘의 상처는 언제나 아물런지 희미하게 떠오르는 새벽 미명에 깊어도 익숙해지면 얕아지고 마는 지금은 깊지만 곧 얕아질 물에서 어둠은 또 쓸려나지만 더 깊은 물에서 다시금 하루 묵어가자 하루에 하루를 흐르다 세월에 세월이 잊혀지는 어느 때인가 시퍼런 물 깊은 곳에서 바닥에 등 곧게 펴지는 날 어둠은 꺼멓게 맺힌 침묵을 꾸역꾸역 게워낼 수 있을까 (21.04.03 저녁 9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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