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시4 (2012년 ~ 2020년)/미공개작 A

밥(飯)

시를 쓰는 공인중개사 조태식 2011. 6. 23.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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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눅한 세상, 머리에 화로라도 인 듯

스멀스멀 등허리를 기는 땀

견디다 못해 하늘을 찢었다, 힘주어 찢었다

쏟아지거나 말거나

잽싸게 발을 털고 세상 밖으로 나가

 

낮과 밤이 항상 침침한

나직한 재 너머 허름한 암자(庵子)

뒤를 쫓아온 산 그림자에 하루를 내어주고

재래식 아궁이에 매운 연기를 피우며

후후 바람을 불다 눈물이라도 글썽이면

어느새 옆에 와 쪼그려 앉는 부처

 

밥 잘 지으면 불경도 염불도 부질없어

밥 지을 땐 밥만 짓고

밥 먹을 땐 밥만 먹는다면

겸상(兼床)한 부처를 일찌감치 재우고

연화좌(蓮華坐)에 대뜸 올라

밤이 새도록 지켜보리라

세상을

너를

그리고 나를.

 

2011. 6. 23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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