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가 세상을 적시고 있다.
그저 푸근한 느낌에 잿빛 하늘도 지면 가까이 내려앉은 듯하다. 뚜렷하게 할 일도 없지만
그래도 움직여 본다.
모든 것이 고요해 지고 묵직한 상처들만이 남아 사람들을 여기저기로 흩어 보내는 듯 걷는
이의 발걸음이 무거워 보인다. 굳게 다문 입에선 말로 하지 못하는 아픔이 느껴진다.
무엇이 우리를 약하고 보잘 것 없게 하는 걸까, 욕망일까 아님 스스로 힘에 부쳐 체념하기
때문인가.
갖고자 한다고 다 가질 수 없고, 노력한다고 다 얻어지는 것이 아님을 안다. 각각의 타고난
재질이 다르니 살아가는 방식도 달라 서로의 삶에 불균형이 이뤄지고 또한 그 능력을 십분
발휘할 수 있는 여건이 균등하게 주어지는 것도 아니니 가슴속에 남다른 응어리가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인간의 삶이 지속되는 것이 아닌 다음에야 거기에 연연해 남은 생을
고달프게 할 이유는 없다.
주어진 속에서 순리를 따르고 마음이 가는대로 힘껏 사노라면 이 만물의 흐름에 조화로운
동반자가 되지 않을까. 아직은 뭐라 말할 수 없지만 흐름의 이치를 조금은 엿본 것도 같다.
만사는 그 나온 곳으로 돌아가되 빨리 가기도 하고 천천히 돌아가기도 한다. 급한 곳에선
급하게 하고 완만한 곳에선 또한 느긋하게 하여 서로 도와서 우주순환의 작용이 아름다운
선율의 울림을 가져야 하리라.
(2010. 3. 15 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