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볕은 따사로운데 바람은 차다.
우주의 흐름은 고요한데 뜨겁지도 차지도 않으며 느낌이 없지도 있지도 않지만 따사로운
빛처럼 나른하다. 다만 마음의 흐름이 거칠거나 멈추거나 한시도 일정치 않아 차가운 듯하다.
책을 읽음에 구절구절에 막히니 잠시 책을 덮고 멍하니 하늘을 본다. 지해(知解)도 둔하고
지혜(智慧)도 엷어 봐도 멍하고 들어도 웅웅거림만 있다. 본시 온 곳도 모르고 갈 곳도 모르며
지금 이 자리도 알 지 못한다.
천길 벼랑에 서서 끊어진 경계에 한걸음 크게 내디뎌야 하거늘 꽉 달라붙은 발등 위로 온갖
망념만 흩어졌다 모였다 하는구나.
버려야 함에도 버리지 못하고 가질 수 없음에도 막연히 갖고자 바라니 한순간인들 고요할
수 있을 것인가.
마음이 마음을 속이고 몸이 몸을 제압하여 문득 멈추어 본들 그 어디에 평안함이 깃들 것인가.
인연을 따라 가고 인연을 기다리며 마음과 몸을 당겼다 놓았다 하노라면 한 시절 거친 바람이
불어와 쓸고 지난 뒤 잔잔한 미풍에 한 손으로 날리는 머릿결을 쓸어 올리고 다른 손으로
이마를 가려 멀리 청명한 하늘가를 가름할 날 있으리라.
지금은 그저 격류의 거친 물살에 손을 담그고 쥐었다 폈다 하며 문득 잡혀올 그 무엇인가를
기다릴 뿐이다.
초봄 햇살은 거침이 없는데 자꾸만 몸이 웅크려지는 참으로 앞도 뒤도 없는 막막한 공간에
숨소리도 쉬 뱉어지지 않는다.
(2010. 3. 16 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