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야(前夜) 어머니, 저기 어둠이 옵니다 하지만 누구의 기억엔들 남아 있을까요 긴 머릿결 풀어 사위를 감아두고 한자리 맴돌아 초점조차 잃었음에 그 기억들이 이제 등에서 차갑게 얼어붙고 있습니다 자지러지는 기침을 부여잡고 당신의 체온이라도 느낀다면 어머니, 그 깊은 어둠속에 무엇을 숨기셨나요 이젠 .. 자작시1 (1980년~1990년) 2010.12.09
단상(短想) 어스름 돌아오는 머언 기억들 머금은 피 토해 무심코 뻗은 손길 마디마디 허공만 닿아 더는 울음도 없어라 흐르는 피 바랜 하늘 가장자리로 별도 없고 바스라져 내리는 고목, 바람만 돌아 빈 가슴 부여안으며 멀리 달아나는 휑한 눈길에 이제토록 아린 그리움이어라. (1985. 06. 17) 자작시1 (1980년~1990년) 2010.12.09
외조모님전2 - 성누가병원에 입원중인 할머니께- 반쯤 뜨신 겐가, 감으신 겐가 팔십년 깊은 시름 차곡차곡 개어 병실 한 켠에 밀쳐두고 가만히 나를 건네보면 사십년 나의 삶이 안개처럼 스러진다 보고 계신건가 무심히 흐른 세월 따라 꿈인 냥 꿈인 냥 그저 한바탕 눈물진 춤사위인 것을 아직껏 안쓰러워 밥 먹었.. 자작시2 (2005년~2009년) 2010.12.09
삶이 귀가 먹먹하리만치 고요한 밤에 슬며시 깨어난 나의 의식은 텅 빈 듯 꽉 찬 도무지 옴축할 수조차 없는 허무의 공간속으로 끌려가고 시간이 멈춘 듯 여기서 난 더할 수 없이 커진 눈의 곤두선 털에 설핏설핏 경련이 이는 하찮은 짐승에 다름 아니다 심연의 늪인 양 질척이며 한 치 틈새도 없이 바싹바.. 자작시2 (2005년~2009년) 2010.12.09
북한강의 새벽 먼 산 기슭 딛고 내려서던 푸근한 구름 한 자락 길게 팔 뻗어 순백의 은빛 망사로 이제서야 깨어나려는 새벽을 낚는다 설핏 설핏 드러나는 흐릿한 산 골짝 미끄러져 수면 가득 물안개 피어 올리면 옅은 어둠속 낯익은 풍경이 해말간 모습으로 솟아나고 하루를 여는 생명의 기운들 하나 둘 긴 기지개 켜.. 자작시2 (2005년~2009년) 2010.12.09
동해에서 검푸른 파도 낯빛 바꾸며 쏴하니 밀려왔다 하얗게 포말만 일으키고 미련없이 물러서면 모래 씻기운 자갈위로 흐트러진 자태의 미역 여기저기 나동그라지고 조개 줍는 아이들의 눈길이 바쁜 걸음 재촉하는 자그만 게 앞길을 막아간다. 물결 따라 잠겼다 떠오르는 매끄러운 바위 틈새로 조사들이 낚아 .. 자작시2 (2005년~2009년) 2010.12.09
海松을 기리며 지축을 울리며 내게로 오라 천년의 세월 뒤로하고 가파른 벼랑 쉴 새 없이 내려치는 거친 파도 발끝으로 차올리며 시간을 딛고 공간을 밀치며 그렇게 내게로 오라 얼마나 버텨온 삶 이던가 검붉은 하늘에 머리 디밀고 몸뚱아리 하나로 버텨 채이고 뒤틀린 가지 끝에 아직껏 푸른 잎새 흔들릴 때 다시.. 자작시2 (2005년~2009년) 2010.12.08
나의 부모님께 바치는 글 아비의 이마 푸른 힘줄 툭툭 불거지도록 어미의 휜 허리뼈 마디마디가 텅 비도록 삶과 맞서 물러서지 않았음에라 하늘 가득 먹장구름 덮여 그 깊은 산 온 몸 뒤채면 거치른 숨 연신 토하면서 계곡 쓸어 내리는 황토 그득한 저 거칠 것 없는 기세를 보라 무엇하나 버림이 없이 온 가슴으로 쓸어안고 잠.. 자작시2 (2005년~2009년) 2010.12.08
뇌성폭우가 쏟아지는 청평에서 한순간 하늘 휘감아 올려 칠흑의 장막 드리우더니 세상이 노한 천둥소리에 진저리 치고 어둠 찢으며 앞 산 어림 내려 꽂는 섬광 벼락에 잠시 잠깐 고개 들던 그 큰 산 파랗게 질려 버린다 거친 폭우도 마구 흔들어 젖히는 바람결에 제 몸 하나 가누지 못하고 온 사방 미친 듯 부딪혀 간다. 누가 있어 온.. 자작시2 (2005년~2009년) 2010.12.08
회 상 얼마나 오랜 시간 그리 왔을까 황토먼지 옷깃에 치렁치렁 매어달고 멀거니 바라보며 멈춰 서버린 삶의 열정은 예서 얼마큼이나 멀어 졌을까 못다 한 말 남았음 무엇하리 시간은 저 홀로 휘적휘적 가버리는데 자꾸만 지워지고 또 지워져 지난 시절 무슨 일 있었던가 불쑥 땅에서 솟은 양 아무런 기억이.. 자작시2 (2005년~2009년) 2010.12.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