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양원의 밤(다락원실버텔에서) 산속의 밤은 일찌감치 누워 깊은 물 속의 울림으로 거듭거듭 가슴을 두드리고 세월의 파랑에 밀려 낯선 이곳에서 마지막 숨결을 더듬으며 들풀처럼 한 시절을 넘어가리라 그렇게 지나가리라 그저 순순한 미소로 시간을 잊고 돌아보지 않으려 자꾸만 눈이 흐려지지만 차가운 밤기운에 이.. 자작시4 (2012년 ~ 2020년)/미공개작 A 2013.01.28
길 가을이 돌아서고 있다 새치름하게 치켜뜬 눈 몰려다니는 잎에선 바람이 일고 날릴 만큼 날리고도 멈추지 않는 나는 가고자 한다 뚝뚝 부러지는 마른 시간을 뒤로 하고 언제든 돌아오는 것과 그러지 못하는 것의 거리 얼어붙은 수면을 걸어가려는 가을이 겨울을 기다리는 딱 그만큼의 간.. 자작시4 (2012년 ~ 2020년)/미공개작 A 2012.11.10
꿈 그대, 꿈을 꾼 적 있는가 흐르는 숲에 발을 담그면 시간을 누르는 고요 귀 멀고 눈 멀어 세월에 가려진 기억을 거슬러 올라 이제 낯설기만 한 그 꿈 앞에서 한 겹 한 겹씩 세상이 내게 준 옷을 벗으며 하얀 나신위로 안개가 쌓이면 물빛 실루엣에 잊었던 날개가 돋고 무심코 걸어 온 길에 .. 자작시4 (2012년 ~ 2020년)/미공개작 A 2012.10.25
또 한번의 추석 밤하늘엔 너스레를 떠는 시간들의 수다가 널려있다 도도하게 내려다 보는 묽게 상기한 달무리도 오늘이 그 정점이다 휘영청 늘어진 빛그림자를 거둬 돌아설 때야 뒤를 따르는 차가운 눈이 있음을 알리라 인생이란 알 수 없는 것 알아서는 안되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삶은 죽음과 같고 죽.. 자작시4 (2012년 ~ 2020년)/미공개작 A 2012.10.04
모친상(母親喪)을 치르며 어머니, 눈물이 나지 않아요 세상은 제게 눈물을 강요하지만 저는 가만히 감겨진 어머니의 눈을 봐요 더는 세상의 일이 비집고 들어서지 못하게 귀를 감싸고 자꾸만 머리를 무릎사이에 넣어요 이제 저는 어머니의 순전(純全)한 아들이 된 것 같아요 어머니, 왜 지금에서야 미소가 떠오르는지 모르겠어.. 자작시4 (2012년 ~ 2020년)/미공개작 A 2011.07.26
밥(飯) 눅눅한 세상, 머리에 화로라도 인 듯 스멀스멀 등허리를 기는 땀 견디다 못해 하늘을 찢었다, 힘주어 찢었다 쏟아지거나 말거나 잽싸게 발을 털고 세상 밖으로 나가 낮과 밤이 항상 침침한 나직한 재 너머 허름한 암자(庵子) 뒤를 쫓아온 산 그림자에 하루를 내어주고 재래식 아궁이에 매운 연기를 피.. 자작시4 (2012년 ~ 2020년)/미공개작 A 2011.06.23
생명(生命) 아! 더워, 너무 더워 번들거리는 이마의 땀 한 올의 거짓도 없는 生命의 진솔(眞率)함 가만히 땀을 훔치는 손등이 붉다 스스럼없이 흘러내리는 네 이마의 정결(淨潔)한 땀 흐르는 땀을 받아내는 간결하고 서늘한 생명 그 긴 여백을 보고 있자니 이제라도 주저치 말고 땀이나 흘려야겠다. 2011. 6. 20 (월) 자작시4 (2012년 ~ 2020년)/미공개작 A 2011.06.20
잠(睡眠) 겟세마네 동산에 남은 기력 쏟아내고 무슨 생각 있어 골고다 언덕까지 십자가를 옮겼을까, 그러니 곤한 잠 들 수밖에 보이는 것만 보는 것에 가슴이 시려 고삐 풀린 육신에 차꼬를 채워 닦달하니 굳이 보리수 그늘 아니라도 잠이 들 수밖에 깨어도 곧 긴 잠에 다시 들거나, 언젠가 다시 깨어나길 기다.. 자작시4 (2012년 ~ 2020년)/미공개작 A 2011.06.14
할 수만 있다면 앞으로만 가는 차를 탄다 다시는 돌아오지 못해도 좋다 끝없이 다가서는 미지(未知)의 환상과 두려움 그래서 더욱 살 떨리게 좋은지도 모른다 새로움과 생경함이 情의 끈적이는 설움보다 가뿐하듯 남겨질 마음도 돌아볼 아쉬움도 없으니 굳이 앞쪽이 아니라도 좋다 멈추지만 않는다면 어둠보다 더 검.. 자작시4 (2012년 ~ 2020년)/미공개작 A 2011.05.16
생일(生日) “生日 너무 너무 추카“라는 글귀와 잘 그려진 케잌과 촛불이 밝은 문자가 왔다, 딸에게서 나도 축하 축하(祝賀) 미역국은커녕 식은 찌개도 없는 한 평 남짓한 고시원 방에서 딸이 보낸 문자로 축가를 부른다 삶이란 본시(本始) 떠도는 음률과 같은 것 하나가 울리면 덩달아 울리다가 결국 자신만의 .. 자작시4 (2012년 ~ 2020년)/미공개작 A 2011.05.13